에드가 다비즈. 그는 피치 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며,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선수다. 고글을 쓰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은 체격이었지만-전혀 작아보이지 않았음- 다비즈는 축구가 체격만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했다.
1. 다비즈는 누구인가?
에드가 스티븐 다비즈(Edgar Steven Davids)는 1973년 3월 13일, 수리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일찍부터 빛을 발했고, 아약스 유소년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아약스는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굴해내며 유럽을 평정하고 있었는데, 다비즈는 그 황금세대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수비력, 폭발적인 활동량, 그리고 거칠지만 정교한 태클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하지만 그를 단순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기는 어렵다. 때론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때론 중원을 지휘하는 사령관처럼 뛰었다. 공격적인 전진 드리블, 빠른 판단, 날카로운 패스까지, 그는 경기를 읽는 능력과 기술, 투쟁심을 동시에 갖춘 선수였다.
2. 고글을 쓴 이유
투혼의 상징 다비즈의 트레이드마크는 단연 ‘고글’이었다. 처음엔 다들 패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고글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었다. 그는 녹내장을 앓고 있었고,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고글을 착용해야 했다. 일반 선수들이라면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질병이었지만, 다비즈는 오히려 그 한계를 개성으로 승화시켰다. 고글은 곧 다비즈의 상징이 되었고,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눈에 띄는 선수로 변모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고글맨’, ‘사이보그’, ‘전장의 투사’로 불리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3. 1998 프랑스 월드컵
다비즈의 월드 클래스 입증 다비즈의 진가가 전 세계에 완전히 알려진 무대는 바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다. 네덜란드는 당시 최전성기였고, 다비즈는 중원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그는 경기 내내 엄청난 활동량으로 수비와 공격을 오가며 경기를 조율했다. 실질적인 플레이 메이커는 아니었지만, 그의 공헌은 수치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준결승 브라질전(사실, 이 경기에서의 중앙침투만 고집하던 네덜란드의 공격전술은 의문이었다. 지속적으로 측면을 공략했다면 경기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에서의 투혼, 경기 내내 상대의 에이스들을 압박하며 공간을 차단하는 모습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네덜란드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지만, 다비즈는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이후 그에 대한 평가에는 항상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4. 화려한 클럽 커리어
유럽 전역을 누비다 다비즈는 아약스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이후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짧은 기간만 머무른 뒤, 유벤투스로 이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맞이했다. 유벤투스 시절, 그는 중원에서 파트너들과 함께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수비 시에는 마치 제 3의 센터백처럼 내려와 공간을 커버했고, 공격 전개 시에는 과감한 전진으로 상대 진영을 흔들었다. 유벤투스는 다비즈의 활약 덕분에 이탈리아 세리에 A와 유럽 무대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그는 바르셀로나로 임대되어 라리가 무대에서도 활약했고, 인터밀란, 토트넘, 크리스탈 팰리스 등 다양한 클럽에서 뛰었다. 소속팀이 어디든 다비즈는 항상 '팀을 하나로 만드는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5. 전사형 미드필더
그라운드 위의 지휘관 다비즈는 경기마다 마치 전장에 나선 병사처럼 싸웠다. 그의 몸싸움, 태클, 상대를 압도하는 피지컬은 축구장에서의 ‘격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단순히 힘만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탁월한 위치 선정, 지능적인 수비, 타이밍 좋은 압박으로 상대를 조용히 제압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감독들에게는 신뢰를, 팬들에게는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열정은 보는 이들마저 숨이 차게 만들 정도였다. 그는 단순히 경기를 뛰는 게 아니라, ‘싸우고 있었다’.
6. 팬들과의 교감
세계적인 팬층 형성 다비즈는 실력뿐 아니라 개성과 캐릭터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고글, 드레드헤어, 강렬한 눈빛,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그를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 남미, 북미 등 전 세계에 걸쳐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특히 그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메시지를 던지며 존재감을 키웠다.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SNS를 통해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히 이어갔다. 그에게 팬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동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7. 지도자로서의 삶
다시 축구를 가르치다 현역 은퇴 후 다비즈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12년에는 잉글랜드 하부리그 반슬리 FC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고,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유소년팀, 오렌지 레전드팀 등을 지도하며 선수들에게 ‘진짜 축구란 무엇인가’를 전했다. 그는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력보다 자세와 열정을 강조하는 철학을 가르쳤다. “축구는 심장으로 하는 스포츠”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다비즈의 유산
기록보다 더 깊은 유산을 남긴 다비즈는 단지 수많은 경기 출전이나 트로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선수다. 그의 축구는 ‘숫자’보다 ‘기억’에 남는다. 팬들은 그의 슛보다 태클을, 그의 어시스트보다 헌신적인 수비를 기억한다. 그는 경기장에서 가장 먼저 뛰어나가고, 가장 늦게까지 버티는 선수였다. 그런 그의 정신은 지금도 많은 어린 선수들에게 영감을 준다. 피지컬이 작아도, 체격이 약해 보여도, 열정과 헌신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이가 바로 다비즈였다. 에드가 다비즈. 그는 고글을 쓴 전사였고, 중원의 불도저였으며, 팬들에게 사랑받은 전설이었다. 그는 늘 한계를 넘어섰고, 경기마다 영혼을 불태웠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스타들 사이에서 그를 ‘잊을 수 없는 선수’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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