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예술로 만든 사나이
축구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어울리는 선수를 꼽으라면, 많은 팬들은 주저 없이 이 이름을 말합니다. 데니스 베르캠프. 그는 단순한 공격수가 아니었습니다. 골을 넣는 동작 하나, 공을 트래핑하는 순간 하나, 패스를 흘리는 시선 하나마저도 마치 무용수의 동작처럼 매끄럽고 아름다웠죠. 그래서 그는 수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스맨”, “무빙 포에트”, “축구의 철학자”… 하지만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그의 축구는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여정
196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베르캠프는 일찍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클럽 아약스에서 성장하며,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을 체화한 세대였죠. 어린 시절부터 차분하고 냉정했던 그는, 경기 중 감정에 휘둘리는 법이 없었고, 늘 계산된 움직임과 냉정한 판단으로 플레이했습니다. 1986년, 불과 17세의 나이로 아약스 1군 무대에 데뷔한 베르캠프는 곧바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기술과 창의성을 겸비한 공격수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아약스에서 그는 총 239경기 122골을 기록하며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떠올랐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실망, 그리고 재도약
베르캠프는 1993년, 인터밀란으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무대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당시 세리에 A는 수비 중심의 전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기에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언론과 팬들의 비판은 잔인했고, 그는 인테르에서 2시즌 52경기 11골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긴 채 떠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베르캠프를 ‘이탈리아에서 실패한 선수’로 기억하려 했지만, 그는 곧 그들에게 완벽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 무대는 바로 잉글랜드, 아스널이었습니다.
하이베리에 내려앉은 예술가
1995년, 아스널은 750만 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큰 돈을 들여 베르캠프를 영입합니다. 많은 이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곧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새기게 됩니다. 특히 아르센 웽거 감독과의 만남은 베르캠프의 커리어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웽거는 베르캠프의 기술과 지능을 전폭적으로 믿었고, 그를 중심으로 아스널의 공격 전술을 세우기 시작했죠. 이후 앙리, 융베리, 피레스 등과 함께 베르캠프는 아스널의 황금기를 만들어갑니다.
전술적 역할 – 진정한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표본
전통적인 9번 스트라이커가 골을 책임지는 선수라면, 베르캠프는 ‘9번과 10번의 사이’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흔히 말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또는 ‘쉐도우 스트라이커’의 전형이었죠.
그는 골을 넣는 능력도 뛰어났지만, 오히려 찬스를 만드는 플레이에서 더 위협적이었습니다. 전방과 미드필드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상대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는 패스와 움직임, 그리고 빠른 판단으로 아스널의 공격 전개를 이끌었습니다.
앙리는 자주 전방을 돌파했지만, 그 중심에는 늘 베르캠프가 있었습니다. 그는 상대 수비수 한두 명을 끌고 다니면서도 공을 잃지 않았고, 한 번의 터치로 상대의 전술을 무너뜨릴 줄 아는 선수였습니다.
당시 아스널의 4-4-2 혹은 4-4-1-1 전형에서 그는 단순한 2톱이 아닌, 플레이메이커이자 공격의 컨트롤 타워였던 셈입니다.
아름다움의 정점, 뉴캐슬전 골
그의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바로 2002년 뉴캐슬전에서의 환상적인 골입니다. 로베르 피레스의 패스를 받은 베르캠프는 수비수를 등지고 있다가, 왼발로 공을 뒤로 흘리며 몸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해 수비를 제친 후 마무리 슛을 성공시킵니다. 이 골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과 경외를 안겼고, 지금도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베르캠프는 이 골을 설명할 때조차 “내 머릿속에선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예술로 대했던 그의 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베르캠프의 고집 베르캠프의 또 다른 유명한 면모는 바로 비행기 공포증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비행기 사고를 목격한 후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프로 선수 시절에도 해외 원정 경기 중 대부분은 버스, 기차, 혹은 아예 결장으로 대처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 대항전 출전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였고, 아스널과 팬들 역시 그의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나는 내 한계를 증명해왔다.”는 그의 말은 그가 어떤 태도로 축구를 대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수치보다 기억되는 선수
***베르캠프의 기록은 화려합니다***
◆ 아스널 통산 기록: 423경기 120골 111도움
◆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의 핵심 멤버 (2003–04)
***** 당시 베스트일레븐 - 앙리(프랑스), 융베리(스웨덴), 비에이라(프랑스), 피레스(프랑스), 베르캠프(네덜란드), 질베르트(브라질), 캠벨(영국), 애슐리 콜(영국), 옌스레만(독일), 로렌(카메룬), 콜로투레(코트디부아르)*****
◆ 네덜란드 대표팀 A매치 79경기 37골
◆ 199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전 전설의 논스톱 골
하지만 그는 수치보다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선수입니다. 화려한 페인트, 공을 죽이는 정교한 퍼스트 터치, 찰나의 순간을 꿰뚫는 패스와 시야. 그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매 순간을 작품처럼 연기했습니다. 축구는 생각하는 게임이다 베르캠프는 은퇴 이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단순히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뛰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축구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철학은 지금도 많은 젊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그는 단순히 볼을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라, 경기를 ‘읽는 능력’, 즉 지능으로 승부하는 방식을 축구에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메이커’라고 하면, 지금도 그를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의 베르캠프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한 베르캠프는 곧바로 지도자 수업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약스로 돌아가 유소년팀을 지도하며 자신이 배운 ‘크루이프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죠.
2011년부터는 아약스 1군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데 보어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리그에서 아약스를 다시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그는 젊은 선수들의 멘탈 관리와 기술 훈련에 있어서 매우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지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다만, 지도자로서도 그는 ‘공간과 움직임’을 중시했으며, 복잡한 전술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창의성과 결단력을 신뢰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베르캠프는 이후 감독직 제안도 있었지만, 본인의 성향과 철학에 맞지 않는 자리라면 굳이 맡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히며 조용히 축구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나는 축구를 통해 감동을 주고 싶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여전히 ‘예술가’다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데니스 베르캠프는 축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냉정했지만 결코 차가운 선수가 아니었고, 계산적이었지만 창의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골들은 단지 득점 이상의 의미를 가졌고, 그가 흘린 패스 하나에도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축구는 단순한 승부가 아닐 수 있다는 걸, 그라운드 위에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선수. 그가 바로, '움직이는 시인' 데니스 베르캠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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